영상 리뷰/판타지&SF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결말 본 리뷰 및 얕은 해석

범쿠룽 2018. 4. 8.

동화적인 모양새로 그린

사랑을 주제로 그린 그림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La forma del agua, The Shape of Water)


2018년작 - 123분

감독 - 기예르모 델 토로

주연 - 샐리 호킨스 (엘라이자)

마이클 섀넌 (침묵 패티쉬 한국전 참전용사)

더그 존스 (어인족), 리차드 젠킨스 (그림꾼)

옥티비아 스펜서 (흑인 청소부 친구)

마이클 스털버그 (박사님)


  이 글에 상당부분의 스포일러가 있다는걸 알려드립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괴 생명체와 인간 사람의 사랑이라는 예고편, 아니 포스터만 봐도 흥미가 생기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대중성을 갖춘데다가 해석하기에 따라서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걸 느낄 수 있는 웰메이드 SF 로맨스 영화였습니다. 굉장히 추천할 수 있는 영화인데 이 글은 관람 이후 보시는게 더 좋을 것 같네요. 이 글은 사실은 해석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결말에 대한 감상평에 가깝기 때문에 맹신하지 말고 재미로 읽어주세요!



내가 뽑은 명대사

달걀, 음악, 로맨스...

성공적.


내가 불완전한 존재란걸 모르는

그런 눈빛이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요.


(차 살때)

녹색은 별로 안좋아하는데...

'청록색' 이에요.

고뤠?! 어맛 이건 꼭 사야해


우리가 아무것도 안한다면

우리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도 그 사람처럼 입을 뻥긋거리고

소리를 내지를 못해요

그럼.. 나도 괴물이에요?


신은 우리를 닮았겠지

당신보다는 내 쪽을 더 닮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은데..


넌 절대 모를거야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마지막 한 인물이 죽기 전)

당신이 신이였어...


셰이프 오브 워터 줄거리

  우주 개발 경쟁이 치열했던 1960년대 배경입니다. 미국 어느 비밀 실험실에서 청소부인 엘라이자는 우연히 온몸이 비닐로 덮여있는 어인을 발견하는데, 잡혀오기 전까지는 신으로 추앙받던 존재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잡혀와 실험실에서 해부되어 우주연구에 사용될 위기에 빠지는데, 그의 신비로움에 빠진 엘라이자는 이 어인을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종을 초월한 사랑을 그려내기 때문에 일단, 신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고 60년 냉전 시대의 암울함이 함께 녹아져 있어서 분위기 설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등장인물들

  한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 조금씩 억압을 받거나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60년대의 흑인, 소련 출신이라는 특수성, 성 소수자, 외모적으로 다르고 종족이 아예 다른 존재, 말을 못하는 일부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있으며 거기에 추가적으로 강자의 역할에 서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릭밴드는 침묵에 패티쉬가 있고 또한 야망이 넘칩니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은 성희롱을 당하고 어인 괴수는 신체적인 능력이 뛰어남에도 다르게 생긴 모양으로 강제적인 실험을 당하고 성 소수자는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파이가게 직원에게 괄시당합니다. 혐오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받거나 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 속 많은 인물들은 편견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그게 단순 편견이 아니라 얼마든지 폭력과 차별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릭밴드

  영화에서 이런 억압받는 캐릭터에게 대표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캐릭터인 릭밴드를 비꼬는 부분이 많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성희롱을 날리는 이 캐릭터가 차를 사러 간 뒤 직원의 말에 홀리는 부분은 이 캐릭터를 돌려 맥이는 탁월한 방법이었습니다. 초록색을 싫어한다는 말을 하는 릭밴드는 '청록색'라는 말과 함께 화려한 판매원의 언변에 바로 차를 구매하고, 이후 다른 사람이 이 차를 초록색이라고 하자 '청록색'이라며 정정해줍니다. 영화 시간상 곧바로 바뀌는 그의 말이 되려 그를 조롱하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그 청록색 차는 박살나버리죠? 그리고 침묵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이 인물은 말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성희롱 하는 장면과 성관계 중 상대의 입을 막으며 우월감을 느끼는 장면에서 상대에 대한 억압이 보입니다. 그리고 신의 형태를 '남자이며, 백인일 것이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기에' 엘라이자의 앞에서 신은 본인과 더 가깝다는 발언을 하는 것으로 신의 형태를 단언합니다. 그리고 수화를 통해 전달한 엘라이자의 F로 시작하는 욕을 알아듣지 못하는 장면과 마지막 죽음에서 '신은 당신이였어..' 라는 장면에서 감독은 이 인물을 엄청난 멍청이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걸 보며 차별과 억압으로 위에 설 수 없다는 듯 질타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인 괴물을 차별하고 억압하던 이 인물의 타락은 영화의 많은 장면의 메세지가 차별과 억압에 대한 반발이라는걸 보여줍니다. 또한 그걸 이용해 엘라이자와 어인의 로맨스를 부각시킵니다.


엘라이자와 어인

  엘라이자는 어인과 가장 깊은 소통을 하는 인물입니다. 억압과 폭력으로 위험에 처한 어인을 '말'을 할 수 없는 엘라이자라는 캐릭터가 지켜냅니다. 어인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이어집니다. 백마디 말 없이도 이 관계의 깊이가 깊어지는건 진정 사랑에 빠지는 것에 필요한건 '말' 이라는 표현 방식이 아닌 서로를 생각하는 진심에었음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말'에 갇혀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면 '말'은 그 의미를 상실하는것과 다를게 없음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엘라이자가 노래를 통해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은 모를 것이라고 하지만 이미 어인은 그 마음을 알고 있었음을 생각해보면 말보다 소중한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백마디 말보다 중요한 하나의 진심에 대한 생각입니다. 진정 소통하려 한다면 화려한 언변보다 중요한 진심을 가지라는 의미를 표현합니다. 릭밴드처럼 나를 '가지려고' 하는 사람보다 나를 '아끼려고' 하는 사람에게 그 진심이 있음을 느끼는건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의 상대가 어인이라고 한들 바뀌지 않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받았습니다. 진심은 종족과 성별과 외모와 같은 것들조차 신경쓰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메세지입니다. 특히나 언어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이 중요합니다. 말보다 중요한 것들은 생각보다 꽤나 많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둘의 로맨스를 받아들일까?

  이 둘의 첫만남에선 경계하지만 이후 서로 '음악'이라는 수화를 주고받으며 음악을 들은 후에 한마디의 말도 없이 수조 사이로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은 호기심에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로맨스를 물처럼 명확한 형태가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쨌든 영화는 전반적으로 계속되는 편견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이후 이 둘의 로맨스를 받아들일 수 있을것인가 혹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종족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맞지 않은 느낌을 받을 것인가. 그 존재가 지성을 가지고 있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고 있지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부정할 것인가를 통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고 제안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편견은 폭력으로 바뀔 수 있음을 영화 전체에서 보여주며 우리는 이 편견에서 자유로운가를 생각할 수 있게하는 것이 바로 이 둘의 로맨스이지 않을까요? 셰이프 오브 워터(물의 모양)의 한국 부제는 사랑의 모양입니다. 물의 모양은 어느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결국 물은 모두 물이라는 것. 사랑 또한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가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지만 결국은 사랑입니다.


마지막 결말 후기

  이 로맨스를 받아들였어도 못 받아들였어도 좋을대로 생각하면 됩니다. 결국 엘라이자에게 어릴적부터 있었던 목의 상처가 아가미로 바뀌는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결국은 혹시나 엘라이자 역시 인간이 아니었음을 생각하게 만들어주니까요. 혹시 어인과의 혼혈일지도 모릅니다. 또는 어인의 능력으로 상처를 아가미로 바꿨을 수도 있겠죠. 상상에 따라 달라지는 여주인공의 존재는 알아서 상상하면 됩니다. 확실한 설명이 있는 장면은 없습니다. 어쨌거나 이 둘은 그들의 방식으로 '말'이라는 단계를 뛰어넘고 물과 같은 순수함으로 사랑했으니까요. 이제 이 영화 속에서 우리의 편견은 애매모호 해졌습니다. 이 여자는 어인이기에 어인 남자와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인간이지만 위기의 순간 사랑의 감정으로 어인이 여자의 상처를 아가미로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됐거나 이 둘은 사랑한다는 것만이 결말로 남아있습니다. 영화 안에 있던 수많은 편견들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준 다음, 우리에게 알아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마지막 결말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둘의 사랑이 종족을 초월하여 찝찝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나요? 혹은 아름다운 종족을 초월한 사랑으로 받아들였나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소외받던 이 둘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만족합시다. 저의 셰이프 오브 워터 결말에 대한 얕은 해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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